[올캐 언니] 승무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없다.

 

 

 

Wing을 단 KLM 승무원 / 출처: KLM Blog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슨 자질이 필요할까?

 

얼마 전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 하나 있었다. 승무원 자질이 있느냐고 묻는 도발적인 제목이었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본 문구 중 가장 황당한 문구였다. 책 제목을 보고서 딱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질은 무슨 자질. 회사원 하는데도 자질을 따져야 하나?'

 

어떤 업무에 자질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일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특별한 능력을 말할 때 쓴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손흥민이나 박지성과 같은 축구 재능이 있어야 하고 알파고를 누를 프로 바둑기사가 되고자 한다면 이세돌 같은 판단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즉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경우에만 자질을 따지는 거다.

 

그럼 승무원은? 승무원은 그냥 회사원이다. 자질을 따지고 말고 할 부류의 전문직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자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다. 

 

왜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검사내전'을 쓴 김웅 검사가 이야기가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웅 검사가 외부 강연을 나가면 주로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검사가 될 수 있어요?"나 "검사 일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한다. 승무원 지망생이 승무원에게 묻는 거나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검사에 대해서 묻는거나 질문이 별반 다르지 않다. 책에서 검사가 되기 위한 방법을 간단명료하게 답해준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대학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로스쿨에 입학하고 거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으면 된다고 말이다. 대한민국 상위 1%라고 하는 검사가 되는데 결코 어떤 자질이나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다. 승무원은 검사와 달리 특별한 자질이 요구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들어본 적 없다. 다만, 검사일을 하는데 책 읽기가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처럼 승무원도 어학 능력이 좋으면 업무에 도움이 될 순 있다. 하지만 책 읽기를 잘한다고 검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어학 실력이 좋다고 승무원이 되는게 아니다. 

 

 

 

승무원 채용공고에 특별한 자질을 요구하는 항공사는 없다.

 

승무원 채용 공고는 수시로 나온다. 보통 상반기나 하반기에 채용공고가 뜨기도 하지만 중반기로 불리는 뜬금포 공고도 자주 올라온다. 지원 조건은 '2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 'TOEIC 550점 이상'이 전부다. 나머진 시력이랑 신체건강 및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것으로 그냥 건강하고 외국에 입국 못할 정도로 죄를 짓지 않으면 된다. 기준은 이게 다다. 도대체 이 공고 어디에 특별한 자질을 요구한다는 것일까?

 

승무원이 남들과 달리 특별한 일을 하지만 승무원도 회사원이다. 물론 가끔 나도 내가 회사원이 맞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비행 스케줄에 따라 한 달에 회사를 서너 번만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원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 평범한 회사원을 하는데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적어도 2,000만 명은 회사생활을 위한 특별한 자질이 있는 셈이다. 인구 절반이 갖고 있는 자질이면 특별한 게 아니고 평범함에 가깝다. 

 

승무원 교관으로 근무할 때도 승무원에게 필요한 특별한 자질이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물론 영어나 제2외국어를 잘하거나 공감능력이 좋거나 센스가 있거나 하면 일을 더 빨리 적응하고 잘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 능력이 부족해서 승무원 교육과정에서 탈락하거나 인턴계약이 종료되거나 한 일은 결코 없다. 중도탈락도 자질 문제가 아니라 지각이나 과제 미수행 같은 성실성의 문제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망생을 상대로 고작 1~2년밖에 안된 경력으로 사기 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승무원 자질을 꼬집을 정도의 능력이 있으면 회사에서 진작에 인사부 채용담당을 시켰겠지 회사를 나가도록 두었겠나.